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루스 록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본래 로큰롤과 블루스 두 장르가 [[흑인]] 음악과 밀접한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두 장르 역시 밀접한 관계였고, 이 때문에 블루스 록과 블루스/로큰롤의 경계는 희미하다. [[1960년대]] 후반까지만 해도 장르로서 인정받지도 못했다. 대체로 최초의 블루스 록 아티스트는 [[야드버즈]], [[에릭 클랩튼]], [[비틀즈]][* 1968년 이후 블루스를 조금씩 시도했다가 Get Back 세션([[Let It Be]])에서는 적극적으로 블루스 음악을 받아들였다.], [[플리트우드 맥]][* 팝 록 밴드로 더 유명하긴 하지만, 초대 리더 [[피터 그린]]은 [[에어로스미스]]는 물론이고 [[존 레논]]에게도 영향을 미친, [[에릭 클랩튼]]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던 블루스 기타리스트였다.], [[롤링 스톤스]], [[지미 헨드릭스]][* 흑인 음악가지만 정작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는 백인들의 음악을 부른다고 배척받았다.] 등이라고 여겨진다. 그중에서도 [[에릭 클랩튼]]이 참여한 1966년 앨범인 Bluesbreakers with Eric Clapton이 최초의 블루스 록 앨범이라고 평가받는다. 다만 [[롤링 스톤즈]]의 1965년작 [[(I Can't Get No) Satisfaction]] 등도 블루스 록 장르로 분류되는 만큼 이러한 분류가 공식적이거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. 또한 더 과거로 올라가면 1964년작 [[The House of the Rising Sun]]이 블루스 록의 시초로 불리기도 한다. 그러나 [[에릭 클랩튼]], [[애니멀스]], [[롤링 스톤스]] 등은 모두 영국 출신이기 때문에, 무엇이 시초작인지에는 상관 없이 영국에서 활동하던 백인 기타리스트들이 블루스 록이라는 장르를 정립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. 1960년대 중반 잠시 우위를 점했던 [[사이키델릭 록]]이 무너진 1960년대 후반에 들어 [[하드 록]]과 함께 록 음악의 주류를 차지하였다. [[야드버즈]] 소속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 [[지미 페이지]]가 이끄는 [[레드 제플린]]에 의해 블루스 록이 [[메탈(음악)|메탈]] 장르로 발전하였으며, 이 과정에서 [[블랙 사바스]], [[딥 퍼플]] 등 수많은 블루스 록/하드 록/메탈 밴드들이 만들어지며 메탈 장르가 1970년대부터 [[Nevermind|1990년대 초반]]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는데 일조했다. 이후 메탈은 [[밴 헤일런]]의 등장으로 블루스와는 점차 거리가 멀어졌지만,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하드 록 음악가들과 몇몇 메탈 음악가들은 현재까지도 블루스 록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.[* 애초에 에디 밴 헤일런부터 "에릭 클랩튼은 나에게 영향을 준 유일한 기타리스트다"라고 했을 정도로 블루스 음악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. 밴 헤일런의 보컬인 [[데이비드 리 로스]]는 레드 제플린, 크림, 에릭 클랩튼의 광팬이기도 했고 말이다. 다만 1984년 이후로는 팝 메탈로 전향하면서 기존의 블루스 록에 기반을 준 정통 메탈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.] 1990년대 이후로는 [[하드 록]], [[얼터너티브 록]]과 함께 록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장르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